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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2016

행복우체통직원들의 행복을 전해드립니다.

마나슬루 트레킹 이야기

LSS사업부 임경철 부사장

편집자 주 : 아래는 임경철 부사장님이 보내주신 히말라야 산맥 마나슬루 트레킹 이야기입니다.장장 15일간의 처절하고도 방대한 여행기를 여기 그 일부만 옮겨 싣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고싶으시면 하단의 더보기를 눌러주세요.

2012년 5월 8일 열 하루째 (해발 4460m 에서 5135m 로, 그리고 다시 3720m 하산) 어제 오후부터 내리던 눈이 밤새 그치지 않는다. 새벽 1시 소변을 못 참아 추운데도 불구하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이 고통은 아마 누구도 모르리라.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며 날씨 걱정에 잠 못 들어 2시까지 깨있었다. 오리털 옷에 모자까지 쓰고 자는데도 추워서 덜덜 떨린다. 아침으로 죽을 준다. 참 맛있다. 동행하는 다른 사람들은 잘 먹지 못한다. 나만 열심히 먹고 점심으로 싸준 네팔 빵과 삶은 계란을 받아 배낭에 넣는다. 눈 속에 빠질 것에 대비해 스패츠(발목에서 무릎까지 감싸는 장비) 하고 아이젠은 배낭에 넣었다. 새벽 3시 30분. 어둠 속에서 셰르파를 따라 천천히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만큼은 절대 셰르파를 앞서지 말라고 인솔자가 단단히 다짐을 했다. 남들 걸음대로 걷는데 앞서던 부부가 뒤로 빠진다. 휴식을 취하며 보니 두통과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두 분이 우황청심환과 이뇨제 두통약을 드신다. 어제부터 약 드시는 분들이 많아 졌다. 우리 텐트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만 생으로 견디고 있다. 그분들은 이미 6000m 이상을 다닌 경력자들로 자신이 있는 분들이다. 다시 걷는데 최고령 한 분도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동이 튼다. 6800m 고지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이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고 열다섯 번 네팔에 오신 의사 분이 셰르파를 제치고 나간다. 난 아직 인솔자 눈치를 보며 천천히 걸으니 셰르파가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 돌본다고 먼저 가란다. 눈보라가 계속된다. 왼쪽은 절벽이니 조심해서 오른쪽으로 중심을 주고 오른다. 콧물이 흘러 하는 수 없이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코도 흐르게 놔 둔다. 갑자기 허기진다. 몸이 무거워진다. 얼음판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발이 미끄러진다. 조심스럽게 걷는데 모르는 셰르파가 온다. 물어보니 타이완 원정대 셰르파인데 정상 정복하고 이쪽 경치가 좋아서 예순 살 드신 사진 작가를 모시고 선발대로 넘어 온단다. 몸이 아주 탄탄하고 좋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산행을 하는데 점점 힘이 부친다. 결국 놓쳤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면서 걷는데 이젠 보폭이 10cm도 안 되는 것 같다. 앞선 젊은 친구는 배뇨를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린다. 후에 들어 보니 네팔 네 번째인 세무사 아저씨도 배뇨를 이기지 못하고 일을 봤단다. 숨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7시 30분. 드디어 패스(Pass) 정상이다. 바람이 몹시 분다. 사방으로 청빙을 가진 산봉우리가 있고 눈보라가 친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부모로부터 부유함은 받지 못했지만 이 정도를 견딜 수 있는 몸을 받았으니 더욱더 어머니가 생각난다. 한국에 가면 전화 드리고 찾아가야지 생각했다. 갑자기 또 돌탑이 생각났다. 탑을 쌓고 정성 들여 어머니 건강을 기원했다. 혼자서 사람들 기다리며 카메라를 꺼내니 추워서 작동이 안 된다. 남의 카메라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어 초코바를 먹으며 기다린다. 허기가 밀려온다. 허기지면 고소 증세가 온다고 하기에 정신 없이 입이 얼얼할 정도로 우겨 넣었다. 다행히 몇몇 사람이 올라와서 사진 한 장 부탁하고 셰르파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핑계하고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사가 몹시 급하고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아이젠을 하였기에 자신 있게 내려가는데 아이젠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다행히 손은 다치지 않았는데 오리털 장갑이 찢어졌다. 무릎도 얼얼하다. 정신 없이 하산했다. 500m만 내려가면 고소 증세는 없어진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500m쯤 내려와서야 물 한 모금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타이완 셰르파를 또 만났다. 나보고 정상 한 번 도전하란다. 날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눈이 없는 곳까지 정신 없이 내려오니 빙하 호수가 눈앞에 있다. 옥색 물빛이 눈에 오랜 잔상을 남긴다. 곳곳의 경치를 구경하며 이제야 썬블럭을 바르고 물을 충분히 마셨다. 말들이 방목된 곳을 지나니 넓은 초원이 나온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10시 30분 혼자 빔탕(BimTang)에 도착했다. 다른 분들 2시까지 내려 온다고 했으니 혼자 3시간 동안 놀아야 된다. 이제야 점심으로 싸준 빵을 양지바른 탁자에서 먹으며 오늘 일정에 대한 기행문을 쓴다. 다행히 넘어왔다. 이제야 경치가 아름답다. 어떤 분은 토하셨는지 옷이 온통 얼룩이다. 부부는 사색이 되어 내려와서 바로 몸져누웠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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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년 4월 28일 첫째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카고백을 짊어지고 공항버스에 올랐다. 5시 20분 차다. 6시 30분에 만나 기로 했기에 이 방법 밖에 없다. 아침을 먹고 나섰지만 긴장으로 허기진다. 갈증도 난다. 정 확히 6시 30분 공항에 도착 여행사 직원을 만나 이정표와 서류를 건네 받고 혼자 checking 하러 갔다. 나는 Mileage로 비행기표를 구하여 단체 check up 하지 않고 혼자 첵인 하러 갔다. 항공사 직원이 Business 좌석을 주며 환하게 웃는다. 기분이 좋다. 잘 될 것 같다. 걱정이 앞선 고도 적응이 잘 될것 같은 예감이다. 혼자 들어가서 Lounge에서 든 든하게 아침을 한번 더 먹고 음료수며 기타 등등 단단히 우겨 넣다. 물론 사탕도 많이 넣었다. KE695편으로 올라 또 아침으로 비빔밥에 와인 그리고 영화 세편보니 Katmandu 다. 아 침만 세끼 먹었다. 힘을 보충한다고 지방만 만드는 것 같다. 공항에 Computer없이 수기로 적고 Visa내주고 돈 받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는 세계 최빈국이다. 공항밖으 로 나오니 공기가 탁하고 무척 덥다. 혼자서 나와 무려 2시간이 지나서야 다른 동반자들을 만났다. 의사, 관세사, 세무사 등등 개인 사업자들이 대부분이고, 부부 한쌍 포함 총 13명이 다. 호텔에서 점심먹고 샹그리라 호텔에 짐을 풀고 타멜시장으로 나가 환전도 하고 네팔 사 람들 구경 했다. 그야말로 매연과 먼지 각종 동물의 배설물 그리고 쓰레기 천지다. 오토바 이, 행상들, 자가 발전기 매연, 먼지. 첫 인상부터 나쁘다. 가게는 온통 가짜물건들 그리고 조잡한 흉내낸 상표들의 천국이다. 행정부재의 무질서, 까마귀때 정신없다. 어서 이곳을 벗 어나고 싶다. 네팔 고유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민속춤을 보며 먹는 네팔음식. 날리는 밥알. 말라 비틀어진 돼지고기. 뼈만있는 닭고기 카레. 락시라는 술 벌써 한국음식이 그리워진다. 힘든 하루다. 3 시간 15분의 시차가 더 힘들다. 비가 내린다. 어서 산으로 들어 가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자연에서 사는 나라의 가장 더러운 도시. 이런것을 irony 라고 하나 ? 2) 2012년 4월 29일 둘째날 산악지형에 맞는 버스로 바꿔타고 Arughat으로 향했다. 6시간을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비 포장 도로를 달린 끝에 도착했다 도중에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온갖 종류의 인도산 차 들을 구경하면서 왔다. 네팔사람들은 절벽을 달리는 지프의 지붕에도 사람들이 올라탄다. 그리고 편안하게 즐긴다. 산은 사람이 개간할 수 있는 땅의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두 계단식 논과 밭으로 만들었다. 삶의 치열함이 그들의 깊은 주름살에서 느낄 수 있다. Lodge에 도착 하니 Sherpa파와 porter들이 짐을 나른다. 아줌마들이 머리에 어마어마한 짐을 지고 걸어 가고 남자들은 허영허영 짐도 없이 걷는다. 말 들어 보니 네팔여자들은 부엌일에서 농사일 까지 다 하고 남자는 새끼 만드는 일만 한단다. 나도 이땅의 남자로 태어 났어야 했다. 새끼 만드는 일은 잘 하나? 아니다. 이곳도 내가 태어날 곳이 아니다. 여자들은 네팔에서 안 태어난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오늘부터 Sherpa와 porter들의 service를 받느다. 총 30명의 porter와 5명의 cook 그리고 5명의 Sherpa가 우리의 trekking을 돕는단다. 저녁은 한식 돼지고기 찌개에 김치 깍두기다. 맛있다. 식사 전후 차도 준다. 아주 service가 좋다. Lodge는 도마뱀이 기어다닌다. 그리고 이불은 벼룩이 뛰어 놀게 생겼다. 허름한 나무 침대 하나다. 내 침낭과 내피를 꺼내 덥고 잤다. 내일 부턴 텐트에서 잔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새벽에 천둥 벼락을 동반한 비가 내린 다. 긴장감으로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전기도 안들어 오니 화장실 갈땐 헤드렌턴을 끼고 가 야한다.
3) 2012년 4월 30일 셋째날 (620m 에서 880m) 5시 기상 아침을 먹는데 비가 억수로 내린다. 나는 속도가 빨라 다 먹었으나 속도가 느린 사람들은 밥들고 비 피하는라 야단 법석이다. 567 제도다. 즉 5시 기상 6시 조식 7시 산행 이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비가 잠잠해진 7시 50분에 빗속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 니 공기도 맑고 기온도 내려가 기분이 상쾌하다. 10시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온다. 어느 폭포가 떨아지는 지점에서 주방팀이 점심 준비가 한참이다. 옷을 말리고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출발하여 Liding에서 양쪽의 폭포를 보면서 야영을 하였다. 짐이 무거워 Porter들이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은 경치좋은 곳에서 일찍 야영한단다. 경치가 너무 황홀하 다. 폭포 밑으로 가서 알탕을 했다. 한국에서 폭포라 이름지어진 폭포가 부끄럽다. 협곡으로 내리는 물은 다 폭포다. 언제 부터 머리를 못 감을지 몰라 물만 보면 씻는다. 닭을 잡아서 백숙을 해준다. 3000m 부터는 피를 보지 않는다고 미리 해 준단다. 토종닭이라 고기가 질 기지만 방목한 건강한 닭이다. 이곳 사람들의 경제에 보탬이 됬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 보다 빨리 걷느다고 셀파에게 주의 들었다. 주방팀을 따라 다녔다. 늦게 출발하여 한시간쯤 일찍 떠난 Porter들 다 뒤돌아 세웠다. 아직은 주력이 좋다. 동반자중에 solar charger에 motion X application 가지고 동선을 check하는 사람이 걷는 거리를 게산한다. 참고로 Porter 들 하루 일당은 800 Rupee다. 10 dollar 정도 주는데 식사와 주거문제는 자 신들이 알아서 한다고 한다. 하루 10 bucks에 50Kg 짐을 머리에 이고 산행을 한다. 심발도 쪼리에 양말도 없다. 옷도 우리가 입은 Gore tex도 보온 옷도 아닌 허름한 옷가지 하나 입 고 짐을 나른다. 아들녀석 대리고 꼭 와야겠다. Sherpa는 식사제공에 $6 그리고 Sherpa 대 장은 $20의 일당이란다. 4) 2012년 5월 1일 넷째날 (880m 에서 970m) 4시에 일어나 폭포에 가서 목욕했다. 물은 비교적 견딜만 했다. 언제 씻을 수 있을지 모르 니 물만 보면 씻는다. 누가 보는것도 아니고 보여줄 것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씻고 단정히 한다. 내가 내게서 나는 냄새가 싫어서 일거다. 밤새 천둥과 비가 내렸으나 새벽에는 별이 한 무리로 내려왔다. 하늘이 맑다. 7시에 산행 시작이다. 얼굴엔 Sun block을 몽땅 바르고 챙이 넓은 까우보이 모자를 썼다. Budhi Gandaki 강을 따라 협곡으로 들어 선다. Machahakhola 를 지나 Khorlabesi까지 천천히 이동한다. 유치원생들 처럼 선두의 Sherpa 를 따라 이동한다. 물류를 담당하는 당나귀와의 경쟁이다. 이놈들의 배설물을 피하고 서로 경주 하듯이 간다. 더이상 천천히 가는 선두를 따를 수 없다. 말없이 내 걸음으로 걷기 시 작하여 주방팀 만나면 주방팀을 앞서지 않고 따른다. 이 주방팀을 앞서면 점심을 먹을 수 없다. 이따금 소나기가 내린다. 어린아이들도 머리에 짐을 이고 나른다. 강은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잿빛물이다. 설산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다. Khorlabesi는 두물머리다. 프랑스 trekker들을 만났다. 프랑스 사람들과 여정에 관해 서로 이야기 하고 강으로 씻으러 갔다. 속옷 한가지만 걸치고 Porter들 비누로 목욕하는데 프랑스 여자들도 스스럼 없이 옷을 벗 고 들어온다. 눈이 갈때를 못 찿고 물만 바라본다. 시선처리가 엉망이다. 보여주는데도 볼 수 없다. 또한 봐서 뭐 할까? 저녁후 마을 꼬마아이들의 민속춤 공연을 준비 했단다. $10을 Tip으로 주고 프랑스 사람들을 초대하여 같이 보았다. 즐겁기도하고 측은 하기도 하다. 이 제 텐트도 안락해 진다.
5) 2012년 5월 2일 다섯째날 ( 970m 에서 1570m) 흐리고 구름이 높다. 비없이 시작하나 보다. 협곡을 따라 올라간다. 날씨가 활짝 개고 햇살 이 따갑다. 11시 30분 까지 빠르게 걸었다. 주방팀만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일행들이 출발 만 하면 없어 진다고 말들이 많다. 자유롭게 걸으러 왔는데 줄 맞춰서 구령에 따라 가는것 은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인솔자도 이젠 포기해서 절대 자는곳을 지나가지 말라고 부탁 한다. 점심후 부터 경사가 몹시 가파르다. 절벽길에서 당나귀 사이에 끼었다. 뒷놈이 배냥을 밀고 콧 바람을 내가 훗 분다. 잘못하면 절벽밑으로 추락할 수 있다. 신경이 곤두 선다. 4시 쯤되니 비가 엄청나게 내린다. 선두로 Philim에 도착 비를 피하고 있다. 배가 고프다. 먹을 게 없다. 자리가 좁아 강아지를 몰아 내고 자리를 차지했으나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오니 자리를 양보하고 처마 밑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개 팔자가 상 팔자다. 개고기도 먹지않고 개를 학대 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슬렁 거리다 새끼만 만든다. 암놈도 유전자 좋은 놈만 잘 골라 배곯지 않고 새끼만 잘 키우면 된다. 우리 나라 양반들 누운소 올라 타기보다 좋은 팔 자다. 비가 오니 텐트를 칠 수 없다. Guest House에 짐을 푼다. 우리나라 대합실 만도 못하 지만 오성급 호텔느낌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물가로 가서 혼자 알탕 했다. 왜 깨끗한척 하 는지 나도 모르겠다. 굶을것 계산해서 미리 먹어두는 것과 같다. 양말과 속옷은 빨아서 주 민들 헛간에 조용히 걸어 논다. 사람들이 나중에 가져가서 입으라고 양말과 속옷을 계속 걸 어놓고 수거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안 입는 옷과 양말 많이 가져와서 사람들 나눠 줘야겠다. 여기서 Israel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이야기 했다. 자랑이 길다. Philim은 네팔이 자랑하는 구르카용병 마을이란다. 영국의 대 부대를 몰살시킨 전설의 용병 사람들이다. 지금도 용병으로 버는 돈이 네팔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6) 2012년 5월 3일 여섯째날 (1570m에서 2130m) 다행히 비가 멈췄다. 2시에 깨었다. 밤새 개 짓는 소리에 잠들 수 없었다. 어짜피 일하는것 도 아니고 걷기만 할 거니 걱정은 없다. Porter들도 어제 힘들었는지 일찍 준비하고 떠난다. 5시 40분되니 모든 Porter들이 출발했다. 우린 아침후 7시 10분에 출발하였다. 오늘은 드 디어 2000m 고지로 들어서는 날이다. 5시간 정도 걸으니 Ding 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 곳은 Himal Chuli(7893)와 chuli Himal이 바로 눈앞에 조망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수제비로 허기를 물리치고 한숨 자라한다. 오늘은 고도 2130m Bihi까지만 간다고 한다. 이곳에서 부 터 고지 적응이란다. 2시에 출발하였다. 계곡에 물로 돌리는 맷돌이 있는데 맷돌이 빛의 속 도로 돌아간다. 신기하다. Bihi에 도착하니 3시다. 일정이 나에게는 조금 약한것 같다. 그러 나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불평을 노골적으로 할 수 없다. 친구들 하고 오면 일정을 반으로 줄일 수 있겠다. 갑자기 구름이 몰려온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절벽 가장 자리에 텐트를 쳤다. 긴 밤이 될것같다. 다행히 바람이 숨을 거두고 별빛이 쏟아진다.
7) 2012년 5월 4일 일곱째날 ( 2130m에서 2910m) 날씨가 쾌청하다. Bihi를 떠나 Namrung가지 2660m 로 고도를 높힌다. 날씨가 가을 날씨처 럼 건조해 지고 청명하다. 가파른 암릉길을 당나귀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간다. 처음엔 당나귀가 무서웠으나 몇일 지나니 별거 없다. 녀석들이 나를 경계하는것 같다. 4시간 걸려 도착 하였다.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계곡물에 목욕했다. 물이 얼음물 처럼 차갑다. 물 론 속옷과 양말은 어느집 돌담에 널어놓고(도움이 될까?) 점심장소에서 사람들 기다리니 속 속 도착한다. 여기에 경고문이 써있다. Acute Mountain sickness (altitude sickness) Warning Symptom:
-. Headache(두통)
-. Loss of appetizer(식욕부진)
-. Nausea(메스꺼움)
-. Ataxia(사지 기능장애)
-. Fast pulsing(맥박)
그리고 해마다 세명정도의 외국인이 이 병으로 죽었다고 써있고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올라 가는것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다 증상이 없어지면 올라가고 증상이 계속되면 즉시 하산하라 고 써있다. 약간 겁이 난다. 그러나 아직까진 아무런 증상이 없다. 리히 까지 올라 가니 3 시 15분 이다. 고도가 2910m 이다. Tibet 사람들이 50-60년전에 중국의 박해를 피해 이곳 으로 넘어와 정착한 곳이라 라마불교의 탑과 사원이 많이 있다. 나도 두손모아 기도를 올렸 다. 생각나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축원하였다. 설산이 둘려쌓여있고 계곡밑으로 물이 세차 게 흐른다. 이곳에서 부터 인사말이 Namaste에서 Tasi Delek로 바뀐다. 네팔 인사말에서 티벳 인사말로 바뀐다. 정겹다. 모두들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저녁을 먹고 나자 눈꺼풀이 무겁고 머리가 띵하다. 사람들이 내 얼굴이 부었다고 한다. 고소증세가 나타난다. 두렵다. 커피믹스 봉지와 각종 사탕 봉지가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기압차 때문에 부풀어 올랐다. 그럼 내 고추도 커졌을까? 조용히 내려다 보니 그것은 예전크기 보다 못한것 같다. 실패다. 그럼 여자들 가슴은 여기오면 커지나? 확인할 길이 없어 그만 두었다.
우린 여기서 pass를 넘어 다른 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뒤로 물러 설 수 없다. 민폐를 끼치 면 안되기에 걱정이 된다. 어두운 텐트에서 밤새 걱정했다. 마음을 다 잡고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다짐한다. 난 이겨 낼 거다. 이 고도 부턴 머리도 감으면 안되고 잘때도 반드시 모자를 쓰고 자라한다. 머리에 혈액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으면 고소 먹는다 한다. 물론 씻 는것도 안된다. 문명과 완전히 이격됬다. 다른 고산 경험자 들에게 들으니 특히 아침에 일 어나 텐트 밖으로 나갈때 보온에 신경쓰고 배변시 힘을 주다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 다. 올라오는 도중에 티벳사람들이 구상나무로 집을 짓는데서 주어온 200년 넘는 구상나무 껍질 향기를 맡으며 잠들었다.
여기서 고도와 산소의 비율을 참고로 알려주면,
해발 1000 m 88%
해발 2500 m 73%
해발 3000 m 68%
해발 4000 m 60%
해발 5500 m 53%
그리고 의사이신 동반자말에 의하면 뇌수종이나 폐수종이 발생 할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 하라고 하신다. 일단 고소 증세가 나타나면 신속히 고도를 500m 내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 이라고 한다.
8) 2012년 5월 5일 여드래날 ( 2910m 에서 3390m) 일어나니 머리가 조금 띵하나 컨디션은 좋다. 사람들이 부기도 빠졌단다. 눈꺼플도 정상이 다. 7시에 출발 Lho를 지나니 Manaslu가 왼쪽으로 보인다. 산이 무섭게 생겼다. 천천히 고 도를 높힌다. 11시에 Shyala(3520m)에도착 하니 마나슬루 설산의 영봉들이 파노라마처럼 사방으로 펼쳐진다. 말로표현할 수 없다. 장관 그 자체다. 이제 언덕 하나만 넘으면 만년설 에 다가갈 수 있다. 아직 고소 증세는 없다. 사마에 도착하니 3시 15분 이다. 여기가 Manaslu 정상 정복조들의 base camp가 있는 곳이다. Taiwan 원정대는 정상정복하고 내려 왔단다. 얼굴이 연탄에 보다 더 세카맣게 탔다. Iran 원정대 Summit team과 이야기 나누었 는데 정상 공격중 한명이 고산 증세로 사망하고 자기 혼자 정상 찍고 내려왔다고 한다. 악 수 하고 위로와 영광을 같이 했다. 우리 나라 원정대도 작년 원정대원의 두구의 시신을 수 습하려 왔다고 한다. 나중에 카투만두에서 식당에서 만나 들으니 한구만 찿았다고 한다. Netherland사람들과도 이야기나누는데 다들 걱정반 의지반이다. 설렌다. 동네 한바퀴 돌고 심호흡한다. 약간 머리가 띵 하나 Pain은 없다. 저녁 식사후 DiMox라는 이뇨제를 나눠준다. 고소 증세를 완하 시킨다고 의사분이 이야기 하나, 약으로 버티고 싶지않다. 그분 이야기로는 혈액 순환을 도와주어서 고소를 완하 시키니 먹어도 좋 다고 한다. 자기도 먹는단다. 다만 물을 많이 마시고 자주 소변을 보는것이 흠이지만 즐기 로 와서 고통 받지 말고 먹으라 한다. 약만 받아 놓고 먹지 않고 잠들었다. 고소증세가 나 타 나면 먹으리라. 의사분 말씀으로는 고소 증세가 오기전에 먹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사 람들은 한국에서 부터 복용한다고 한다. 원래 의사말 안듣는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났다. 내 가 고통을 즐기는 체질이니 주인 잘못 만나 몸이 고생 좀 해야 한다. 아니 그동안 약값이 없어서 견딘 것이지 고통을 즐기는 세디즘은 아니다. 혼란이 생각을 지배한다. 어둠이 거치 면 결정하리라. 고통이 기쁨 만큼 아프진 아니 하리라.
9) 2012년 5월 6일 아흐래날 (3390m에서) 5시에 일어나서 보니 마나슬루가 일출을 받아 금빛으로 물들어 바짝 다가온다. 아름답다. 이 경치를 보기위해 올라온것이다. 점입가경이다. 올라갈수록 더욱더 선명한 설산이 눈 속 으로 파고든다. 구름도 걷히고 황금빛 정상이 고고한 자태를 보여준다. 황홀하다. 가슴이 벅 차다. 이제 손끝에 잡힐듯이 다가온다. 사방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사마를 떠나 고소 적 응때문에 오전 산행만 하고 오후는 쉰다. 여유롭게 산과 들꽃과 이야기한다. 고소 때문에 천천히 걸어도 주위에 아무도 없다. 혼자 올라가는 고적함에 야생화들이 반긴다. 빙하가 흐 르는 계곡은 예리하게 잘려져있고 곳곳에 산사태가 났다. 지금도 돌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구렁"하고 빙하 갈라지는 소리도 들린다. 경외한 태고의 신비에 접근한 느낌이다. 처음으로 눈을 밟았다. 9시가 넘자 바람이 거세진다. 8시 에 출발 10시 30분에 삼도(Samdo 3860m) 에 도착하였다. 눈이 가득한 산이 바로 앞에 버티고 있다. 고산적응 때문에 여기서 일박 한 단다. 단체 행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자유산행이 그립지만 고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다소곧이 있는다. 점심후 휴식중에 뒷산으로 올랐다. 곳곳에 구멍이 있고 그곳에 집단으로 고양이 종류들이 산다. 원숭이도 있다. 약 300m 정도 올라 심호흡하고 내려왔다. 다행이 고 소에 잘 적응한다. 내 몸이 험하게 태어나서 잘 적응하나 보다. 원래 노예로 태어나서 신 분 상승했으나 염색체는 아직 하인것으로 남아있어 다행이다. 이곳은 티벳으로 가는 지름길 이 있어 하루면 중국 제품들이 오기 때문에 중국 물건들이 즐비하다. 물론 네팔 맥주며 코 카콜라도 있다. 가격은 고도에 따라 올라간다. 당연히 물류비용이 포함된 가격이다. 아래에 서 200Rupee 하던 맥주가 400rupee로 올랐다. 점심후 빙하가 있는 산쪽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다행히 영 어가 되는 사람을 만나 집으로 초대받았다. 티벳 티를 타주며 이야기하는데 티벳에서 자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50 60년전쯤 넘어왔단다. 사람들이 말하듯이 테벳이 황폐하고 농사 짓기가 힘들어 넘어 온게 아니고 중국의 박해를 피하고 달라이 라마의 독립운동을 위해 넘 어왔다고 한다. 테벳땅이 더 비옥하다고 한다. 처음에 넘어온 사람들의 고생이 눈에 훤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거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생존 능력에 경외심이 생긴다.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면 사람이 산다. 이곳 부턴 나무가 자라지 않아 야크똥이 화력을 제 공해 준다. 이들의 집은 돌과 나무다. 지붕도 돌로 엮어서 비가 새지 않도록 지었고 아래층 엔 가축이 산다. 가축과 인간이 한 공간에서 이층으로 산다. 그들의 자연 친화력에 존경심 이 생긴다.
10) 2012년 5월 7일 열흘(3860m 에서 4460m) 밤에 내리던 눈이 얼었다. 텐트가 뻗뻗하게 얼었고 몹시 춥다. 머리는 다행이 아프지 않고 띵하던 기운도 없다. 어떻게든 적응을 한 모양이다. 햇빛이 드니 삼도히말 봉우리가 태양을 받아 붉게 빛난다. Dharmashala 까지 계속 오르막이고 곳곳에 산사태가 나 있어 길이 유 실되었다. 몸을 산 경사 쪽으로 기울여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눈이 오면 길 이정표로 쓰는 쇠 막대가 약 3m 높이로 언덕 마다 꽂혀있다. 걷다 보니 또 혼자다. 아무도 나를 따라 오지 않는다. 여기서도 버림 받았다. 난 혼자 걷는게 좋다. 다른 사람 신경 안써도 좋고 내가 보고 싶는것 보고 느끼고 싶은것 감상하면서 느긋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여기 저기 돌 탑을 쌓을 수 있는 곳마다 돌탑을 쌓고 두손 모아 기원했다. 아 는 얼굴들 하나씩 떠 올리며 그들의 영혼에 축원했다. 2시간 15분 걸으니 다람살라에 도착 했다. 이곳은 마을은 없고 돌과 나무로 지은 집에 노인 한분이 살고 있다. 이곳이 소위 산 장 카페다. 피자, 파스타, 센드위치 그리고 네팔 음식인 Dal Bhat도 판다. 가격은 400 rupee로 써있는데 사람들에 물어보니 피자가 약 한시간 정도 걸린 단다. 혼자서 이곳을 지 키며 텐트를 임대해 주고 살고 있단다.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동반자들 기다리는데 춥다. 오리털과 고어텍스 옷을 껴입고 양지에 앉았다. 화장실은 아무곳에나 보란다. 이곳 저 곳에 통조림 깡통이 녹슨체 쌓여있다. 천해의 자연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쓰레기 치울 돈이 없어서 그냥 방치한다. 그리고 관광객들도 문제다. 쓰레기를 되 가져가지 않고 버린다. 한글 로된 쓰레기는 안 보고 싶다. 머리가 다시 띵하고 어질어질하다. 점심후 앞쪽에 청빙이 흐 르는 산으로 고소 적응차 올랐다. 계속 돌이 구르고 얼음이 소리를 낸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니 짜릿하다. 5000m 정도에 4층 돌탑을 쌓고 혼자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어느 신이던 가까이 있으신 분이 듣고 보리라. 가족과 친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내 려왔다. 특정한 신을 향한 기도가 아닌 정성을 드린 축원이다. 빙하가 흐르는 V자 계곡에선 계속 산사태가 진행중이다. 눈발이 비치는가 하더니 금세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5시에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 란다. 내일은 바람을 피해 3시 30분에 산행 시작한다. 2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어르 신들은 식사를 못하신다. 젊은 친구 몇몇도 진통제에 이뇨제를 먹는다. 식사 시간에 말들이 없어졌다. 난 식욕이 계속 땡긴다. 평소 못 얻어 먹어서 식탐이 생겼나 보다. 어떤분이 나를 보고 그냥 네팔에서 살아라 한다. 밥 잘 먹지, 산 잘 오르지, 거기에 잠도 잘 잔다. 칭찬은 아닌것 같다. 그만큼 문명과 거리가 먼 삭신을 놀리는것 같다. 난 원시인이다.
11) 2012년 5월 8일 열하루(4460m 에서 5135m) 어제 오후 4시 부터 내리던 눈발이 밤새 그치지 않고 내린다. 1시에 소변을 참지 못하고 추 운데도 불구하고 텐트 밖으로 나오는 고통은 아마 그 누구도 모르리라.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며 날씨 걱정에 잠들지 못 하고 2시까지 누워 있었다. 오리털 옷에 모자까지 쓰고 자는데 도 추워서 덜덜 떨린다. 아침으로 죽을 준다. 참 맛있다. 사람들은 잘 먹지 못한다. 평소 죽 드실 일이 없으셨나 보다. 나만 열심히 먹고 점심으로 싸준 네팔 빵과 삶은 계란 한알을 받 아 배냥에 넣는다. 발에는 눈속에 빠질것에 대비해 스패츠하고 아이젠은 배냥에 넣었다. 어 둠속에서 3시30분 Sherpa을 따라 천천히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만큼은 절대 Sherpa를 앞 서지 말라고 인솔자가 단단히 다짐을 했다. 사람들의 발걸음대로 걷는데 앞서던 부부가 뒤 로 빠진다. 휴식을 취하며 보니 두통과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두분이 우황 청심환과 이뇨제 두통약을 드신다. 어제 부터 약 드시는 분들이 많아 졌다. 우리 텐트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 만 생으로 견디고 있다. 그분들은 이미 6000m 이상을 다닌 경력자들로 자신이 있으신 분 들이다. 다시 걷는데 최고령 한분도 뒤로 처지기 시작한다. 동이 튼다. 6800m 고지 경험이 있는 젊은 사람이 먼저 앞으로 치고 나가고 열 다섯번 네팔에 오신 의사분이 Sherpa을 제 치고 나간다. 난 아직 인솔자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걸으니 Sherpa가 고통을 느끼는 사람 들 돌본다고 먼저 거란다. 눈보라가 계속된다. 왼쪽은 절벽이니 조심해서 오른쪽으로 중심 을 주고 오른다. 콧물이 흘러 하는수 없이 휴지를 꺼내 코를 풀었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코도 흐르게 놔 둔다. 갑자기 허기진다. 몸이 무거워진다. 얼음판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발 이 미끄러진다. 조심스럽게 걷는데 모르는 Sherpa가 온다. 물어보니 Taiwan 원정대 Sherpa인데 정상 정복하고 이쪽 경치가 좋아서 예순살 드신 사진 작가를 모시고 선발대로 넘어 온단다. 몸이 아주 탄탄하고 좋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같이 산행을 하는데 점점 힘이 부친다. 결국 놓쳤다. 가뿐숨을 몰아 쉬면서 걷는데 이젠 보폭이 10cm도 안되는 것 같다. 앞선 젊은 친구는 배뇨를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린다. 후에 들어 보니 네팔 네번째인 세무 사 아저씨도 배뇨를 이기지 못하고 일을 봤단다. 숨이 끊어질듯 이어진다. 7시 30분 드디어 Pass 정상이다. 바람이 몹시 분다. 사방으로 청빙을 가진 산봉우리가 있고 눈보라가 친다. 오늘이 어버이날이다. 부모로 부터 부유함은 받지 못헀지만 이 정도를 건딜 수 있는 몸을 받았으니 더욱더 어머니가 생각난다. 한국에 가면 전화 드리고 찿아가야지 생각했다. 갑자 기 또 돌탑이 생각났다. 탑을 쌓고 정성들여 어머니 건강을 기원했다. 혼자서 사람들 기다 리며 카메라를 꺼내니 추워서 작동이 안된다. 하는수 없이 다른 사람들 카메라에 의지하는 수 밖에 없어 초코바 먹으며 기다린다. 허기가 밀려온다. 허기지면 고소증세가 온다고 하기 에 정신없이 입이 얼얼 할 정도로 우겨 넣었다. 다행히 몇몇 사람이 올라와서 사진 한장 부 탁하고 Sherpa에게 머리가 아프다고 핑게하고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사가 몹시 급하 고 눈이 무릅까지 쌓였다. 아이젠을 하였기에 자신있게 내려가는데 아이젠에 발이걸려 넘어 졌다. 다행히 오리털 장갑을 끼고 있어서 손은 다치지 않았는데 장갑이 찢어졌다. 무릎도 얼얼하다. 정신없이 하산하였다. 500m만 내려가면 고소 증세는 없어진다는 의사 선 생님 말씀대로 500m쯤 내려와서야 물 함 모금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Taiwan Sherpa 를 또 만났다. 나보고 Summit 한번 도전하란다. 농담이 지나치다. 날 죽이고 싶은 모양이다. 눈이 없는 곳까지 정신없이 내여오니 빙하 호수가 눈앞에 있다. 옥색물빛이 눈에 오랜 잔상 을 남긴다. 곳곳의 경치를 구경하며 이제야 Sun block를 바르고 물을 충분히 마셨다. 말들 이 방목된 곳을 지나니 넓은 초원이 나온다.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혼자 10시 30분에 BimTang에 도착했다. 2시 까지 내려 온다고 했으니 혼자 3시간 동안 놀아야 된다. 이제야 점심으로 싸준 빵을 양지바른 탁자에서 먹으며 오늘 일정에 대한 기행문을 쓴다. 다행히 넘 어 왔다. 이제야 경치가 아름답다. 어떤분은 토하셨는지 옷이 온통 얼룩이다. 부부는 사색이 되어 내려와서 바로 몸져 누웠다. 이모든것이 감사하고 아름답다.
12) 2012년 열이틀 (3720m 에서 1860m ) 아침이 아름다운 빔탕에서 새벽별을 보고 야외에 마련한 임시 화장실에서 일을 보았다. 새 로운 기분이 든다. 머리는 빙하처럼 맑고 개운하다. 춥기는 하지만 엉덩이도 상쾌하다. 일출 의 장관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남기고 하산길을 제촉했다. 혼자서 신나게 내려가는데 꼬마가 기름 받으러 가는지 20L 기름통을 들고 따라온다. 자일리톨 사탕을 내 준다. 활짝웃는다. Katche에 도착하니 미국 Califonian 들이 Pass 상태를 묻는다. 눈과 얼음 그리고 바람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부잣집 가족같았고 미인들이다. 여자들은 계속 질문을 하는데 남자들 은 듣기만한다. 질투 하나보다. 우리 주방팀들을 설득하여 더 내려가서 점심먹자고 하여 한 시간 더 내려가 Gho에서 식사 하기로 했다. 여자 주인이 예쁘다. 계곡물이 아주 좋다. 몇일 동안 세수에 머리를 감지 않아서 몰골이 말이 아니다. 계곡으로 내려가 머리를 감으니 거품 이 안난다. 세번째에야 비로소 충분한 거픈이 일어나다. 개운하다. 점심후 혼자서 노래 부르며 내려가는데 숲이 나타난다. 아무도 없으니 이야기 들었던 마적 들이 생각나 두렵다. 혼자 앞장 선 것이 후회된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보고 내 달랐다. 다행히 노파를 만났는데 내가 Namaste하니 내 손을 덥섭 잡으며 Tasi Delek하신다. 눈이 하늘 처럼 맑다. 이는 다 빠져 합죽하지만 미소는 참 곱다. 목적지 Dharapani에 도착하니 오늘 부턴 Lodge에서 잔단다. 나무침대 하나지만 내가 자본 5성급 Luxury Sweet Room이 부럽지 않다. 맥주 파티후 기분 좋은 잠을 청했다.
13) 2012년 열사흘 (1860m에서 1100m) 마지막 Trekking 하는날 이다. 오늘 산행 Steff들과 이별한다. 해가 뜨겁고 또다시 당나귀 와 전쟁이다. Dharapani는 Anna puruna 등반대들이 base camp로 들어가는 길목이기 때문 에 많은 등반대와 Trekker들로 바글바글하다. 내려 가는데 각종 외국 사람들이 하도 많아 서 인사 하기도 바쁘다. 점심으로 비빕국수 먹고 당나귀와 사람들 틈에 끼어서 벼랑끝 길을 어휘어휘 내려왔다. 이별만찬으로 염소 두마리 잡아서 Porter와 Sherpa 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염소고기가 개고기 맛과 똑같다고 알려 줬는데 믿질 않는다. 결국 내 말이 증명됐다. 서로 안타까워 했지만 삶이 만남과 헤어짐으로 이어지는게 진리인지라 뜨겁게 즐겼다. 180Km 걸었다. MotionX로 계산했다니 정확한 거리다. 서울에서 전주까지 걸었다. 그것도 오르막이 대부분이고 너덜길에 벼랑길이다.
14) 2012년 열나흘 아침에 그동안 고생한 사람들과 인사하고 버스에 올랐다. Bhulhule에서 큰 버스로 갈아 타 기로 하고 여긴 절벽길 이므로 지프로 내려 가야 한단다. 왼쪽으로 앉았는데 그곳이 바로 벼랑 길이다. 오금이 저린다. 구르면 바로 하늘이다. 아마 몸통 찿기도 힘들것이다. 자연으 로 돌아 가는데 정말 좋은 곳에 묻힐 수 있을 것이다. 중간에 시끌럽다. 파업을 하는데 모 든 운송 수단을 움직일 수 없단다. 걸어 나와 우리 버스에 올랐지만 Besi Shahar에선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운행할 수 없다고 한다. 젊은 인도계 사람이 올라와 정부에서 우리의 정당 한 요구 즉" 평등한 권리"를 받아 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의 의견이 관철될때 까지 운동을 계속 할 거라며 6시 까지 차량은 운행할 수 없다고 한다. 큰일 이다. 내일 비행기 타려면 오을 밤으로 카트만두에 돌아가야 한다. 내가 통역을 했다. 마오이스트처럼 강하고 논리있 게 이야기 한다. 병원 서비스도 해 주겠다고 한다. 지금 가면 중간에 테러를 당할 수 도 있 다고 협박도 한다. 점심후 러시아인들이 신랑이 하다 먼저 보내 주기에 우리도 보내 달라고 했더니 그들은 비행기가 오늘 밤이라 보내줬단다. 우리도 오늘 가야 내일 비행기 탄다고 설명하니 내 주소와 이멜 적어 놓고 가란다. 나중에 자신들의 입장과 당위성을 보내 겠단다. 이해 한다고 설명하고 무사히 빠져나와 카트만두에 돌아왔다. 다시 지옥에 온 기분이다. 매 연과 쓰레기, 사람들 그리고 혼란 무질서…… 15) 2012년 열닷새 아침 일찍 Gokarna Forest Resort Hoteld 500년된 숲길을 산책하니 원숭이때가 한 무리다. 새끼를 앉고있는 원숭이가 많다. 구르카 용병 출신의 Guard가 길을 안내해 준다. Golf course에 내려서니 한 팀만 있고 다른팀은 없다. 나도 종종 대통령 골프는 쳐 봤지만 이건 아예 황제 골프다. 쓰레기 더미 바로 위에 이런 숲과 골프치는 사람들이 있다. 건방진 숫개 물건 자랑하듯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이 안쓰럽다.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몇몇 귀족과 공 무원들은 수염과 호주머니 자랑에 제 콧속 썩는걸 모른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식사와 와인을 마셨느데 집에 도착하고 부터 설사와 복통이다. 다시 네팔로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