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01
해든솔에서 감사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사회복지법인 해든솔 김명숙 원장
안녕하세요? 해든솔 원장 김명숙입니다. 먼저 2012년 3월부터 현재까지 만 4년 동안 봉사&등산 동호회 '블루마운틴'을 이끌고, 자원봉사 활동과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이연순 과장님과 직원 분들 그리고 주식회사 에프에스티 임직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시설은 일상생활, 여가생활, 직업생활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한 개인의 삶의 질을 고려한 다양한 여가활동을 지원하기에는 인력과 자원의 한계가 있어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독립적인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지적 장애인에게 등산 활동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활동입니다. 블루마운틴은 봉사&등산 동호회 활동을 계기로 그 긴 시간 동안 정기적인 만남과 교제를 가져주셔서, 우리 장애인들은 정서적 안정감을 가지게 되어 사회적 대인관계능력도 향상되었고, 일상생활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는 당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블루마운틴 활동이 끝난 후 "다음에 또 언제 만나요?" 라는 질문이 되풀이됩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가족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반복되는 질문인 것을 알기에 이연순 과장님과 에프에스티 직원들은 아주 친절하게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집니다. 그 미소와 약속에서 우리 직원들이 채워주지 못하는 더 많은 사랑과 넉넉한 정을 나누고 있음을 해든솔 장애인들도 그리고 저를 비롯한 우리 직원들도 느끼고 알기에 항상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입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정성 어린 준비가 감동적입니다. 바쁜 일정 쪼개어 우리 장애인들이 기다리는 그날을 준비해주시는 이연순 과장님과 동호회 직원 분들 그리고 에프에스티 임직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우리 해든솔 장애인들은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실천하고 있는 활동은 향기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장애인들도 누군가에게 향기로움을 전달하는 작은 솔바람이 되도록 해든솔 임직원 모두가 노력할 것입니다. FST 임직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STORY 02
아름다운 숲, '화담숲'을 걷다.
펠리클사업부 이유림 사원
이번 오월에는 봉사&등산 동아리에서 곤지암에 있는 수목원 '화담숲'에 다녀왔다. '화담'이란 말이 궁금해 사전을 찾아보니 '정답게 주고받는 말'이라 나와 있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호가 바로 '화담'이라고 한다. 아아 여기가 화담숲이구나. 첫 느낌이 좋았다. 물길을 따라 나무 널판이 깔려 있어 편안하고 마음을 치유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살랑살랑 봄바람도 시원하게 불어준다. 해든솔 친구들과 손을 잡고 걷는데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싸온 음식물을 펼쳐놓고 먹고 있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늦은 봄이라 꽃이 많지 않아서 좀 아쉬웠지만, 깊고 푸른 숲이 우거져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우리 동아리는 등산을 위해 갔기 때문에, 가장 긴 등산코스 3시간짜리 산행을 선택했다. 우리만의 시간, 조용한 숲속에서 걷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산을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게 가꾸어 놓았다. 감동적이다.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수목원과는 다르다. 최고라고 말해도 될까. 가을 단풍이 물들면 남자친구와 둘이 함께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께도 추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 주 : 화담숲 입장료는 일반 성인 9,000원입니다. 모노레일 등 다른 요금 제외)
STORY 03
아버지 사랑합니다.
DCT사업부 이상원 대리
퇴근 한 시간 전. 업무 마무리로 정신없을 때 아버지의 전화가 왔다. 살짝 짜증이 나서 무시해버렸다. 조금 후 누나의 전화.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단다. 아버지 상태가 궁금한데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통화가 되었다. 응급실로 이송 중이며 당신은 괜찮다는 아버지의 말씀이다. 정면충돌로 폐차 지경이 되었다고 하면서도 애써 담담하게 말씀하신다. 서둘러 퇴근을 했다. 응급실로 달려가지만 아버지의 상황이 어떨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앞차가 운전석까지 밀고 들어와 하반신이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다행히 액셀 페달 부분에 끼었던 오른쪽 발목 쪽만 골절된 상태라고 한다. 입원수속을 마치고 일반 병실로 옮겨드린 다음에야 긴장이 좀 풀렸다. 힘든 하루를 보낸 아버지가 비로소 병상에 누우셨다.
아버지가 안경을 건네며 닦아달라고 하신다. 아무리 정성들여 닦아도 긁힌 자국과 벗겨진 도금은 닦이지 않는다. 내가 결혼할 즈음 마련하신 안경이다. 10년도 넘게 충분히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라며 어머니에게 자랑하던 그 안경이다. 하지만 이제 아버지 곁에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
아내가 아이를 낳고 탯줄을 자를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 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아버지였다. 세상에 태어난 나를 처음 보셨을 때 아버지의 심정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30년 넘는 세월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많은 것들이 그날 이후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제 내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다. 외모, 성격, 호기심, 습관, 그리고 말투까지 모든 것이 어린 시절 나의 모습과 닮았다. 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의 나를 본다. 그리고 지금 나를 통해 그 시절의 아버지를 본다.
병원 출입을 통제하는 직원이 묻는다. "환자와 어떤 관계인가요?" "아들입니다." "아, 보호자시군요. 여기에 보호자라고 적으시면 됩니다."
나는 남자다. 나는 어른이다. 그리고 나는 아빠다.
아버지 사랑합니다.